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정명원/선수 경력 (문단 편집) == 아마추어 시절 == 야구 명문팀으로 유명한 [[군산상업고등학교 야구부|군산상고]] 출신이였으나 [[원광대학교 야구부|원광대학교]] 시절[* 고교 동기 [[이광우]]가 원광대에 입단할 당시에 무려 8명을 끼워팔기 했는데, 정명원은 그 중 한 명이였다. 당대 1985년 전두환 정권 물가를 고려하면 엄청난 일이나 다름없다...] 그만큼까지 그저 그런 선수로 프로에 대한 욕심은 없었고 [[한국실업야구|실업야구 리그]]로 가서 '''[[농협 야구단|취직]]하며 소박한 인생을 살고자 했었다'''고 한다. 물론 그렇다고 그가 아주 별 볼 일 없는 투수였던 것은 아니다. 큰 키에서 내리꽂는 패스트볼이 워낙 강력했기 때문에 타자들의 배트를 곧잘 부러뜨린다는 소문이 지역에 널리 퍼졌다고 한다. 다만 문제는 그놈의 제구력. 긁히는 날은 제대로 포수 미트에 뻥뻥 꽂혔지만 그렇지 않은 날은 마음 먹은대로 공이 가지 않아 스스로 경기를 말아먹던 투수였다. 그야말로 미완의 대기, 조련되지 않은 야생마였던 셈. 다만 제대로 보여준 성과가 없었기에 호남 연고팀 [[해태 타이거즈]]의 지명을 받지 못했고 대신 투수난에 시달렸던 [[태평양 돌핀스]]가 1989년 신인드래프트에서 2차 2순위 지명을 하며 생각에도 없던 인천에서 프로 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1988년 [[청보 핀토스]]를 인수해 창단한 [[태평양 돌핀스]]의 투수진은 명투수의 요람이라던 인천 연고팀의 위용과 다르게 [[답이 없다|눈물만 나오는 상황]]이었다. 청보 시절 팀의 에이스였던 [[최계훈]]은 육군 현역병으로 복무하고 있었던 터라 10승 투수는 한 명도 없었다. 그나마 기교파 좌완 [[양상문]]과 재일교포 [[김신부]]가 9승을 기록한 게 팀내 '''[[류현진/2012년|최다승]]'''이였다. 심지어 양상문의 경우 완투만 8번, 완봉을 1번 하면서 9승을 겨우 따냈는데 같은 기간 해태 [[선동열]]은 시즌 9완투 1완봉으로 16승을 기록했다. 사실 태평양 돌핀스는 리그에서 손꼽힐 정도로 투타의 균형이 안 맞았던 팀이었다. 참고로 1988년 2차 1라운드로 입단했던 신인 투수 [[신완근]]은 전천후로 이리저리 구르며 139이닝을 던지고 부상으로 신음하다가 1993년에 쓸쓸히 은퇴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